[스파이의 세계] (1) 비밀공작원의 마지막 임무는 자신을 제거하는 것
국가정보전략연구소
2019-02-02
영화 ‘공작’의 누적관객이 496만명에 달할 정도로 흥행에 성공하면서 비밀공작원에 대한 일반인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흑금성이라는 암호명이 등장한 것과 현재 남북한이 정상회담을 진행하면서 한반도 통일에 대한 관심이 어느 때보다 높은 것도 작용했다.

영화의 주인공인 흑금성의 진술에 의존해 영화를 연출한 감독이 모든 것을 다 담지는 못했을 것이지만 비밀공작원의 활동 일면을 볼 수는 있었다. 하지만 표면적인 활동을 파악했다고 해도 진면목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 독약 앰플을 포장한 치아로 자결을 시도하는 것이 마지막 임무

국가정보기관의 활동은 정보활동, 방첩활동, 비밀공작활동 등 3가지로 구분된다. 비밀이 보장돼야 하고, 위험이 수반되는 것은 모든 활동이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어떤 활동이 더 어렵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일반적으로 정보활동과 방첩활동은 수요가 많고 상대적으로 위험도가 낮기 때문에 국가정보기관의 활동 대부분을 차지한다. 반면 투입되는 공작원의 신변위험이 높고 성공가능성이 낮은 비밀공작활동은 명확한 판단기준에 따라 진행한다.

비밀공작활동은 성공가능성이 확실해야 하고, 출처를 은폐할 수 있다는 등의 전제조건을 충족시킬 수 있을 때 실행에 옮겨진다. 당연하게 국가 최고지도자인 대통령의 승인도 받아야 한다.

비밀공작활동은 해외에서 수행할 수 있기 때문에 성공가능성을 판단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렇다면 발각됐을 경우에 출처를 은폐하는 것이 중요할 수 밖에 없어진다.

비밀공작에 투입된 공작원이 체포되거나 신분이 노출된다면 상대국 입장에서 전쟁이나 외교분쟁도 불사할 수 있기 때문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공작원이 체포될 때를 대비하는 방법 중 하나가 공작원 자신을 제거하는 것이다.

냉전 당시에 사회주의 국가의 국가정보기관은 공작원이 체포될 경우에 자결할 수 있도록 독약 앰플을 제공했다. 주머니나 신체의 특정 부위에 숨기고 있다가 체포되면 바로 먹을 수 있도록 항상 휴대했다.

하지만 이러한 자살 전략이 노출되면서 공작원을 체포한 즉시 신체수색을 가해 독약 앰플을 압수하는 것이 기본 수칙이 됐다. 이후에 나온 것이 독약 앰플을 치아로 포장한 후 잇몸에 임플란트로 설치하는 방식이 선호됐다.

아래 그림에서 검은 동그라미가 쳐진 부문이 독약 앰플이 숨겨진 인공 치아이다. 체포되는 순간 치아를 강하게 무는 방식으로 앰플을 깨뜨려 자결하기 때문에 심문조차 제대로 진행할 수 없다.

공작원의 이름뿐만 아니라 신원를 파악할 수 없도록 하기 위한 목적이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는 속담처럼 인종적인 특성이 나타난다고 해도 무조건 부인하면 확인할 방법이 없어진다.

일반적인 독약과 달리 순식간에 사망하기 때문에 고통을 느낄 시간조차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 러시아 정보기관들이 영국에서 반역자를 처단한다는 명목으로 사용하는 각종 독약도 노출된 후 수초 이내에 사망한다.

◈ 북한 공작원은 성공했지만 미국 CIA는 실패한 임무

정보기관에서 비밀공작에 투입된 공작원의 마지막 임무가 ‘공작자산’인 공작원인 자신을 제거하는 것이다. 쉽지 않은 임무이지만 사회주의 국가의 공작원들은 대부분 성공하는 편이다.

1998년 속초 앞바다로 침투하다가 좌초된 북한의 잠수정 내부를 확인한 결과 조장이 승조원을 모두 사살하고 자결한 것으로 드러났다. 북한으로 돌아갈 수 없었고 생포되는 것을 막기 위한 최후의 선택이었다.

하지만 자유주의국가에서는 공작원에게 자결을 강요하지 않는 편이다. 기본 수칙으로 정해져 있지만 오히려 생포되는 것을 선택하는 공작원도 있다. 미국 CIA는 1960년대 2회에 걸쳐 공작자산을 제거하는데 실패했다.

1960년 미국 CIA가 인도네시아 수카르노 정부를 전복시키기 위해 투입했던 비밀공작용 항공기가 격추됐다. 수송기는 미국 국기 표시가 있었으며, 조종사는 미군 신분증을 소지한 채로 체포됐다.

같은 해 소련이 중앙아시아에서 수행하는 핵 및 미사일개발 프로젝트를 감시하기 위해 파키스탄 카라치공항에서 이륙한 미국의 U-2정찰기가 소련의 지대공 미사일에 격추됐다. 조종사는 비상탈출을 시도하지 않았고, 비상착륙 후 소련군에 체포됐다.

당시 조종사는 착륙한 이후 비행기를 폭파하거나 자살을 시도하지 않았다. CIA의 훈련 지침대로 독약 캡술을 소지했지만 사용하지는 않은 것이다. 미국 정부와 소련이 협상을 진행해 조종사는 죽지 않고 미국으로 돌아왔지만 미국의 U-2정찰활동은 위축될 수 밖에 없었다.

북한의 공작원은 자신에게 부여된 마지막 임무를 성공했지만 미국 CIA 직원들은 실패했다. 무엇이 성공과 실패를 결정지은 요인인지는 말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된다. 현실적으로 개별 공작원이 자살을 시도하는 것은 쉽지 않은 결정이며 삶을 포기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임무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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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약 앰플이 포장된 황금색 치아 (출처 : 국가정보전략연구소)

민진규 <국가정보전략연구소장> stmin@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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