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문화-효성그룹(1)]삼성과 동업 청산 후 단숨에 계열사 111개사로[민진규 국가정보전략연구소장]
국가정보전략연구소
2012-10-30 오후 1:16:00
'국가정보전략연구소 민진규 소장'은 다양한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창의적인 기업문화 분석 도구인 'SWEAT Model'을 개발하였으며, 이를 토대로 '삼성문화 4.0'을 집필하였습니다.

또한, '국가정보전략연구소'와 '그린경제'는 2012년 7월 11일 수요일자 신문부터 '기업문화 진단과 제언'을 통해 지속성장과 발전을 제시하는 기획물을 시리즈로 연재하고 있습니다.

10월 24일자 신문에 실린 [한국기업문화 진단과 제언 - 효성그룹 편]을 소개합니다.

[기업문화-효성그룹 편(1회)]

[효성그룹의 기업문화(1)]

삼성과 동업 청산 후 단숨에 계열사 111개로

IMF위기 극복하고 새로운 성장동력 모색 중


▲ 효성그룹 사옥
(1)효성의 역사와 이슈

효성그룹(이하 효성)의 창업자인 조홍제 회장은 삼성의 창업자인 이병철 회장과 결별한 후 1962년 효성물산을 설립해 그룹의 기초를 마련했다. 효성은 중공업, 산업자재, 섬유, 화학, 건설, 무역, 정보통신, 금융 등 다양한 영역에서 사업을 영위하고 있으며 2012년 6월 말 기준으로 계열사는 지주회사 역할을 수행하는 ㈜효성을 포함해 111개다. 유가증권 시장에 4개, 코스닥 시장에 1개 등 총 5개사가 상장되어 있으며, 비상장사는 국내 41개, 해외 65개다. 매출액은 크지 않지만 계열사수로는 삼성, LG와 유사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자금난 겪는 삼성물산공사에 돈 빌려주며 동업

삼성그룹(이하 삼성), LG그룹(이하 LG), 효성의 창업자들이 서부 경남 대지주 출신이고 동향이라는 사실은 너무 잘 알려져 있다. 동향인 이들은 자연스럽게 사업적으로 관계를 형성했고, 국내 재벌기업의 역사를 같이 쓰게 되었다. 조홍제 회장은 1948년 삼성 이병철 회장이 만든 삼성물산공사가 자금난을 겪게 되자 돈을 빌려주면서 동업을 시작했다. 그는 인생의 황금기인 40~50대를 삼성그룹에서 보냈다. 삼성 이병철 회장의 요구로 동업을 청산했으며, 청산하는 과정에서 의견이 맞지 않아 감정의 골이 깊어졌다.


▲ 효성 창업주 고 조홍제 회장
조홍제 회장은 삼성의 제일제당, 제일모직의 설립을 주도하면서 산업의 흐름에 대해 경험을 하였다. 1962년 이병철 회장과 동업을 청산하면서 법정관리 중이던 조선제분을 인수했다. 그리고 같은 해 한국타이어, 1963년 조선피혁을 인수하면서 그룹의 기반을 구축했다. 1966년 동양나이론을 설립하면서 꿈에 그리던 섬유사업을 시작했다. 다른 대기업과 마찬가지로 정부의 경제계획에 편승해 1970년대는 중공업, 목재, 기계로 사업을 확장했다. 1980년대는 석유화학과 전자산업에 뛰어들면서 사업다각화를 꾀했다.

1997년 외환위기가 도래하자 다른 대기업이 인력감축을 고민할 때 효성은 주력기업을 통폐합하고 비주력사업은 매각하거나 청산했다. 계열사간 지급보증을 해소하고, 자연스럽게 관리인력을 축소할 수 있었다. 모든 조직을 퍼포먼스 유니트(PU: Performance Unit)로 바꾸고 PU별 책임경영체제를 구축했다. 주력계열사 합병, 비핵심 사업부문 매각 등의 혁신적인 구조조정을 단행함으로써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다. 현재는 주요 사업별 퍼포먼스 그룹(PG)으로 체제가 개편되어 있다.

다양한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후계자

효성은 한때 재계서열 5위까지 올라갔지만 조홍제 회장이 자식들에게 기업분할을 해주면서 중견그룹으로 분리되었다. 둘째 아들에게는 한국타이어, 셋째 아들에게는 동성개발, 큰아들인 조석래 회장은 그룹의 사명과 나머지 기업을 물려줬다. 한국타이어도 계열사를 늘리면서 성장세를 지속했지만 미미한 수준이고, 동서개발은 사업부진으로 쪼그라들고 있다. 효성도 IMF위기를 잘 극복하기는 했지만 사업적으로 정체되어 있으며 새로운 성장동력을 지속적으로 찾고 있다.

2세인 조석래 회장은 보수적으로 사업을 유지했지만, 3세가 경영의 전면에 나서면서 효성이 적극적으로 변하고 보수적 색채가 옅어지고 있다. 조석래 회장의 장남인 조현준 사장이 변화를 주도하고 있다. 그는 2006년 이후 건설과 IT부문으로 사업영역을 확장하기 위해 적극적 M&A를 했지만 IT산업과 건설경기가 어려워지면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알짜로 평가된 진흥건설은 인수 후 부실기업으로 판명돼 연속 적자를 거듭하다가 워크아웃 되었다.

하이닉스반도체 인수시도도 좋았고, LED관련 사업을 하는 갤럭시아그룹도 나쁘지는 않았다. 다만 시대적 변화의 흐름을 읽지 못한 게 뼈아팠다. 휴대폰의 부품인 키패드를 생산하던 기업을 인수한 것까지는 좋았지만 휴태폰이 터치폰으로 바뀐다는 것을 예측하지 못해 실패한 M&A가 되었다.

조현준 사장이 갤럭시아 그룹을 펼칠 때만 해도 시장의 반응은 뜨거웠다. 재벌그룹의 장남이 하는 사업이고, 그룹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좋은 실적을 낼 것이라고 예상됐다. 하지만 유상증자로 자금을 지원하였음에도 불구하고 IT산업 경기가 불투명해지면서 당분간 실적 개선은 어려운 실정이다.

차남인 조현문 부사장은 중공업 부문의 주력 부문인 초고압 송배전 설비사업을 이끌면서 사업의 영역을 내수 중심에서 글로벌 시장으로 넓히면서 이 분야 성장을 이끌고 있고, 삼남인 조현상 부사장은 주력사업 중 하나인 타이어코드 사업을 이끌고 있다. 이처럼 세 자녀가 다양한 분야에서 고군분투하고 있지만 아직 경영능력을 확실히 인정받은 것은 아니며 시험대에 올라 있다고 할 수 있다.

효성의 기업문화 특징은 실속 우선주의, 심사숙고, 철저한 계산이라는 말로 표현된다. 효성의 창업자는 생전에 3명의 자식에서 계열사를 분리해줘 유산분쟁이 없었다. 조석래 회장도 3형제에게 그룹을 분리해 줄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된다면 효성의 사세는 더욱 위축될 것이라고 본다. ㈜효성이 지주회사의 역할을 수행하며 오너 일가의 지분율이 높아 경영권은 안정되었지만 일부 계열사의 부실은 고민이 아닐 수 없다.

정치권에서 친정치적으로 오해

창업자는 정치와는 거리를 두었지만 후계자들은 오히려 정치적으로 밀접하게 연대한다는 인상을 준다. 2007년 3월 참여정부 말기 조석래 회장이 전경련 회장으로 추대되었다. 참여정부가 재벌개혁을 외쳤기 때문에 정부와 전경련 사이는 좋지 않았다. 하지만 사돈가(家)이자 친기업적 정책을 표방한 이명박 대통령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새로운 도약의 전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됐다. 효성의 이름이 언론에 전면적으로 등장하게 된 것은 MB정부의 출범부터다. 특별히 눈에 보이는 사업적 특혜를 준 것은 아니지만 오해를 받는 경우가 많았다.

2007년 대검찰청이 효성의 비리를 수사했지만 이를 덮었다가 2009년 공소시효가 소멸되어 불기소 처분했다. 2010년 7월 검찰은 조현준 사장이 2002~2005년 회사돈으로 해외부동산을 취득해 횡령을 하였다는 명목으로 기소했다. 이 사건은 1심부터 유죄를 선고 받았고, 2012년 9월 대법원에서 확정판결을 받았다.


▲ 삼성 창업주 고 이병철 회장효성의 이름을 언론에 오르내리게 만든 사업은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2006년부터 추진한 일명 ‘세빛둥둥섬’이다. 한강에 전시와 공연을 위한 공간을 확보하는 차원인데, 이 인공섬 조성 및 운영사업권을 가진 기업이 플로섬으로 효성의 계열사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부임한 이후 서울시 공무원들이 시장의 승인도 받지 않고 계약변경이 됐다는 내용이 밝혀져 징계를 받기도 했다. 세빛둥둥섬은 서울시의 재협상 요구로 정상적인 운영이 되지 않아 현재 흉물로 방치되고 있다.

효성 오너 일가기업인 로우텔크놀로지도 2009년 국방부에 훈련장비를 납품하면서 단가를 높이고 허위 세금계산서를 발급하는 수법으로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옛말에 ‘오비이락(烏飛梨落)’이라는 말도 있고 ‘참외밭에서 신발끈을 매지 말라’는 말도 있다. 모두 의심받을 수 있는 행동은 하지 말라는 뜻이다. 노태우 정부 때 사돈기업이었던 SK그룹이 한국이동통신을 인수해 이동통신시장의 1위 사업자로 자리매김했듯이 정권마다 특혜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더구나 친기업 정책을 표방한 MB정부에서 대통령의 사돈기업이 특혜를 볼 것이라는 의심은 누구나 할 수 있었다. 효성이 기업에 필요한 산업재가 주력사업이기 때문에 국민의 부정적 인식이 사업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이겠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을 것이다. 한국에서 기업가는 정치와 불가근 불가원(不可近 不可遠)해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민진규 객원기자(국가정보전략연구소 소장)/stmin@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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