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문화-한진그룹(8)]후계자 중 현장 전문가없어 본원적 경쟁력 잃어가[국가정보전략연구소]
'국가정보전략연구소 민진규 소장'은 다양한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창의적인 기업문화 분석 도구인 'SWEAT Model'을 개발하였으며, 이를 토대로 '삼성문화 4.0'을 집필하였습니다.
또한, '국가정보전략연구소'와 '그린경제'는 2012년 7월 11일 수요일자 신문부터 '기업문화 진단과 제언'을 통해 지속성장과 발전을 제시하는 기획물을 시리즈로 연재하고 있습니다.
2013년 05월 29일자 신문에 실린 [한국기업문화 진단과 제언 - 한진그룹 편]을 소개합니다.
[기업문화-한진그룹 편(8)] (8)한진의 기업문화 진단후기
후계자 중 '현장 전문가'없어 본원적 경쟁력 잃어가
2세들의 법정다툼·3세의 튀는 행동도 부정적 요인
그룹 사업 전반적 정체…관리보다 현장에 충실해야
(8)한진의 기업문화 진단후기
▲ 대한항공이 노조창립기념일(5월 18일)을 맞아 지난 11일 서울시 상암월드컵공원 평화잔디광장에서 4000여명의 임직원 및 가족들이 참석한 가운데 ‘노사동행 한마음 걷기대회’ 행사를 열었다. 대한항공 임직원 및 가족 등 걷기대회 참가자들이 출발선을 지나고 있다.
[그린경제=민진규 국가정보전략연구소장] 한진의 기업문화를 정리하면서 새삼 한국식 경영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하게 됐다. ‘창업자가 아들, 특히 장자에게 핵심 기업을 물려주고, 창업자의 자녀들이 기여도에 따라 기업을 나눠가지는 것이 과연 승계자나 주주에게 유리할까’하는 의문점이 들었다. ‘경영권을 무조건 자식에게 물려주는 것이 자식 혹은 주주에게 도움이 될까’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 한진의 후계자가 경영능력이 떨어져서 이 고민을 하게 된 것은 아니다. 다른 대기업도 한진과 비슷한 처지다. 수천 년 동안 검증된 ‘부자 3대 없다’는 격언이 21세기에도 통용된다는 사실이 신기하지만, 과학기술이 발전하고 세상이 풍요롭게 된다고 해도 인간의 욕망과 세상의 본질은 바뀌지 않는다.
그룹을 일군 창업자의 자식들이 모두 타고나 경영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어떤 자식은 아버지의 능력을 물려받았고, 어떤 자식은 기업경영과는 거리가 먼 특성을 보이기도 한다. 장남이 가업을 이어 받는 동양식 전통도 한번쯤 고민이 필요하다. 삼성그룹의 창업자 이병철 회장은 장남인 이맹희 대신에 3남인 이건희에게 기업을 물려줘 장자세습의 전통을 깼지만 형제간의 불화를 막지는 못했다. 현대그룹의 창업자인 정주영 회장도 장남인 정몽구 대신에 5남인 정몽헌을 후계자로 지목했지만 후계자가 된 이후 행복한 삶을 누리지 못하고 생을 달리했다.
한진은 창업자의 자식들이 회사를 분할해 승계 받았다. 장남이 그룹의 간판기업들을 물려받았고, 다른 형제들은 한진중공업, 한진해운 등을 나눠 가졌다. 한진해운은 며느리가 물려받아 독립경영을 하고 있지만 공식적으로 계열분리는 이뤄지지 않았다. 조양호 회장이 그룹분리에 부정적이라고 하지만 최은영 회장측은 의지가 확고하다고 한다. 한진중공업은 주력 사업을 필리핀 수빅만으로 옮긴 후 노사분규로 몸살을 앓고 있다. 정치권의 중재로 한진중공업의 노사대립이 타결됐지만 여전히 불씨를 안고 있다. 현재 상황이라면 한진중공업이 정상화되어도 과거의 명성을 유지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한진의 형제들은 창업자의 재산, 유언장 등을 두고 형제간에 10여 년 동안 법정다툼을 벌였다. 형제간의 기나긴 법정다툼으로 체면을 구겼고, 소송은 끝났지만 형제간의 불편한 관계는 아직 해소되지 않았다. 그룹을 분할해 물려받았지만 모두 성공적으로 경영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차라리 경영능력이 출중하다고 판단한 자식에게 그룹을 물려줬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다른 자식들은 지주회사의 지분만 갖고 배당을 받는 것이 자신들에게도 유리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무조건 기업의 회장이나 사장을 해야 인생의 폼이 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창업자의 장남으로 그룹을 경영하고 있는 조양호 회장의 자녀들도 튀는 행동으로 이슈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3세가 경영전면에 나서고 있지만 다른 그룹과 마찬가지로 이들의 능력을 객관적으로 검증하기 어렵다. 경영능력은 평가하기 어려운데, 경영자로서 이해하기 어려운 돌출행동은 부정적인 평가를 유도한다. 차세대 오너로 꼽히는 3세가 불필요한 논쟁에 휘말리면서 실력부족을 드러내거나 기업가치를 훼손한다면 기업의 미래는 어둡다.
▲ 대한항공 관계자들이 19일 오후(한국시각) 나보이에서 공항 인근 자유경제개발구역(FIEZ) 지원을 위해 개발 중인 배후 복합단지 내 주거 시설인 'HJ 나보이 컴플렉스 (HJ Navoi Complex)' 개관식을 개최하고 있다.
한진뿐만 아니라 국내 모든 대기업의 후계자에 해당되는 말이다. 일부 국내 대기업의 역사가 50여 년을 넘어 서면서 아직 국내 대기업 중 어디도 후계자로 지목된 2세, 3세가 확실한 경영능력을 보여준 곳은 없다. 그룹을 물려받은 2세나 3세가 정상적인 경영에 실패해 그룹을 망하게 한 사례는 많다. 2세의 경우는 큰 실수만 하지 않으면 창업자의 가신들이 조력을 잘 하기 때문에 결정적인 위기를 초래하지 않지만, 3세의 경우에는 경험이 풍부하고 능력 있는 가신들이 자발적·비자발적으로 조직을 떠났기 때문에 위기진단이나 대처능력을 갖지 못한 경우가 많다.
이제 오너의 자식이라는 신분뿐만 아니라 경영능력도 보여 줘야 주주, 임직원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지지와 존경을 받을 수 있다. 그룹차원에서 인위적인 성공체험은 후계자 본인뿐만 아니라 기업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후계자 자신도 주위의 아부성 발언을 경계해야 한다. 후계자가 치열하고 어려운 과정을 거친 창업자보다 학교공부를 많이 하고, 지식도 풍부하겠지만 기업경영의 성공이 학교성적이나 지식의 양에 절대적으로 의존되지는 않는다. 자신의 능력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되는 자녀들은 조용하게 자신의 그릇에 맞는 인생을 사는 것이 행복하다는 사실도 잊지 않았으면 한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인생의 본질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게 된다. 기업문화를 연구하고, 주요 대기업의 기업문화를 분석하면서도 기업의 본원적 경쟁력이 무엇일까에 대한 생각을 한다. 일본에는 많은 100년 기업이 왜 한국에는 나오지 않는 것일까? 왜 부자 3대를 이어가지 못하는 것일까? 일부 연구소나 전문가들이 100년 기업의 조건으로 제시하는 것이 타당한가? 삼성이 그토록 닮고 싶다는 스웨덴의 발렌베리가문의 진정한 노하우는 무엇일까?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기 때문에 선대가 쌓은 재산과 명예를 후대에 넘겨주고 싶어 한다. 당연한 욕심이라고 생각한다.
한국과 일본의 장사(사업)에 대한 관념을 간단하게 비교해 보자. 한국은 사농공상(士農工商)으로 상인을 천시했지만 일본은 그렇지 않았다. 일본은 사회적 윤리를 지키면서 장사를 하는 것이 기본이라고 생각하지만, 한국은 어떻게든 돈만 벌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도 차이가 있다. 장사의 핵심이 무엇인지에 대한 생각도 다르다. 한국은 장사를 하면 주인이 카운터를 보면서 돈을 관리한다. 일본의 주인은 카운터가 아니라 현장 일을 한다. 음식점을 경영할 경우 일본의 주인은 주방에서 음식을 직접 한다. 조리법은 대대로 전수돼 몇 백 년 동안 이어진다.
한국의 음식점 주인들은 주방업무는 사람을 고용하고, 자신은 카운터에서 편하게 계산만 한다. 종업원이 혹시 돈을 훔칠까 봐 가장 중요한 돈을 챙긴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음식점의 핵심경쟁력은 카운터에서 돈을 정확하게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주방에서 맛있는 음식을 만드는 데서 나온다. 망하지 않고 수십 년을 이어오고 있는 음식점의 경우 자손들은 모두 음식 조리법부터 배우고, 주인이 직접 양념준비나 대표 음식의 조리를 책임진다. 주인이 주방이 아니라 카운터에 앉아 있는 음식점은 3년을 넘기기도 어렵다. 직장 퇴직자들이 요식업 창업을 쉽게 생각하고 달려들지만 대부분이 3년도 넘기지 못하고 망한다. 음식조리를 할 줄 아는 주인의 음식점만 살아남는다.
▲ 대한항공이 최근 인천시 용유초등학교에서 1~3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늘사랑 영어교실'을 개최했다. 대한항공 인천여객서비스지점 직원들이 어린이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음식점의 경영에 대해 설명한 것은 기업경영도 규모만 다르지 본질은 동일하다는 것을 말하기 위함이다. 음식점의 핵심이 주방이라면, 기업의 핵심은 관리가 아니라 제조나 서비스 현장이다. 창업자는 현장에서 일을 하면서 기업을 키웠지만, 후계자들은 창업자가 번 돈으로 편하게 공부하고, 현장이 아니라 관리업무부터 배운다. 경영학을 잘 모르는 창업자가 회계, 재무와 같은 관리도 중요하다는 것을 파악했기 때문이다. 다른 이유는 자식에게 어려운 현장 일을 시키고 싶지 않는 것이다. 현장을 모르는 후계자가 관리만으로 기업을 유지·발전시키는 일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한진이 글로벌 물류기업으로 자리매김하고자 한다면 조중훈 회장의 자식이나 손자중에서 물류업의 일선에서는 사람이 나와야 한다. 즉 다시 말하면 한진이 해운, 항공물류를 주력으로 하고 있다면 선박을 운행하는 항해사, 항공기를 조종하는 조종사 혹은 정비사를 해야 한다. 옆에서 본 이론만 가지고 전문가들을 통제하고 관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조중훈 회장도 장남인 조양호 회장에게 대한항공을 맡기려고 했다면 아들을 항공기 조종사나 정비사로 만들었어야 했다. 다른 아들들도 마찬가지다. 마케팅이나 기획부문 경험만으로 대한항공을 경영하는 것은 어렵다.
경영자가 호통이나 치고, 무조건 밀어붙여 성과를 내는 시대는 이미 지났다. 한진의 조양호 회장도 현장에 대한 지식과 경험이 풍부하지 못해 한진의 핵심 경쟁력을 잘 살리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자신의 자식들이 아무리 귀엽고, 사랑스럽더라도 힘들고 어려운 현장업무부터 시켰어야 했다. IT서비스, 마케팅, 기획과 같은 업무를 경험하고 인위적인 성공체험을 쌓아 주는 것만으로 경영권을 승계한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조양호 회장의 자식들이 아직 어리니 본질의 교육을 하는데 늦지는 않았다고 본다.
3세의 트위터 논란, IT서비스업체 일감몰아주기, 대한항공 기내폭행 사건일지 유출, 사건일지 유출에 대한 평가 등 다양한 논란의 중심에 후계자로 지목된 3세들이 있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대처하고 있다고 판단할 수 있지만 앞에서 지적했듯이 본질을 잘 파악하고 있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업의 본질을 파악하지 못하면 제대로 된 해결책을 찾기 어렵다. 항공업의 본질이 무엇인지, 물류업의 미래방향이 어떤 것인지, 기업문화의 혁신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 등 고민거리가 산재해 있다. 한진의 사업이 전반적으로 정체돼 있고, 본원적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는 이유가 본질을 놓치고 있기 때문이라고 판단돼 아쉬움이 남는다.
/민진규 객원기자(국가정보전략연구소 소장)/stmin@hotmail.com
또한, '국가정보전략연구소'와 '그린경제'는 2012년 7월 11일 수요일자 신문부터 '기업문화 진단과 제언'을 통해 지속성장과 발전을 제시하는 기획물을 시리즈로 연재하고 있습니다.
2013년 05월 29일자 신문에 실린 [한국기업문화 진단과 제언 - 한진그룹 편]을 소개합니다.
[기업문화-한진그룹 편(8)] (8)한진의 기업문화 진단후기
후계자 중 '현장 전문가'없어 본원적 경쟁력 잃어가
2세들의 법정다툼·3세의 튀는 행동도 부정적 요인
그룹 사업 전반적 정체…관리보다 현장에 충실해야
(8)한진의 기업문화 진단후기
▲ 대한항공이 노조창립기념일(5월 18일)을 맞아 지난 11일 서울시 상암월드컵공원 평화잔디광장에서 4000여명의 임직원 및 가족들이 참석한 가운데 ‘노사동행 한마음 걷기대회’ 행사를 열었다. 대한항공 임직원 및 가족 등 걷기대회 참가자들이 출발선을 지나고 있다.
[그린경제=민진규 국가정보전략연구소장] 한진의 기업문화를 정리하면서 새삼 한국식 경영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하게 됐다. ‘창업자가 아들, 특히 장자에게 핵심 기업을 물려주고, 창업자의 자녀들이 기여도에 따라 기업을 나눠가지는 것이 과연 승계자나 주주에게 유리할까’하는 의문점이 들었다. ‘경영권을 무조건 자식에게 물려주는 것이 자식 혹은 주주에게 도움이 될까’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 한진의 후계자가 경영능력이 떨어져서 이 고민을 하게 된 것은 아니다. 다른 대기업도 한진과 비슷한 처지다. 수천 년 동안 검증된 ‘부자 3대 없다’는 격언이 21세기에도 통용된다는 사실이 신기하지만, 과학기술이 발전하고 세상이 풍요롭게 된다고 해도 인간의 욕망과 세상의 본질은 바뀌지 않는다.
그룹을 일군 창업자의 자식들이 모두 타고나 경영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어떤 자식은 아버지의 능력을 물려받았고, 어떤 자식은 기업경영과는 거리가 먼 특성을 보이기도 한다. 장남이 가업을 이어 받는 동양식 전통도 한번쯤 고민이 필요하다. 삼성그룹의 창업자 이병철 회장은 장남인 이맹희 대신에 3남인 이건희에게 기업을 물려줘 장자세습의 전통을 깼지만 형제간의 불화를 막지는 못했다. 현대그룹의 창업자인 정주영 회장도 장남인 정몽구 대신에 5남인 정몽헌을 후계자로 지목했지만 후계자가 된 이후 행복한 삶을 누리지 못하고 생을 달리했다.
한진은 창업자의 자식들이 회사를 분할해 승계 받았다. 장남이 그룹의 간판기업들을 물려받았고, 다른 형제들은 한진중공업, 한진해운 등을 나눠 가졌다. 한진해운은 며느리가 물려받아 독립경영을 하고 있지만 공식적으로 계열분리는 이뤄지지 않았다. 조양호 회장이 그룹분리에 부정적이라고 하지만 최은영 회장측은 의지가 확고하다고 한다. 한진중공업은 주력 사업을 필리핀 수빅만으로 옮긴 후 노사분규로 몸살을 앓고 있다. 정치권의 중재로 한진중공업의 노사대립이 타결됐지만 여전히 불씨를 안고 있다. 현재 상황이라면 한진중공업이 정상화되어도 과거의 명성을 유지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한진의 형제들은 창업자의 재산, 유언장 등을 두고 형제간에 10여 년 동안 법정다툼을 벌였다. 형제간의 기나긴 법정다툼으로 체면을 구겼고, 소송은 끝났지만 형제간의 불편한 관계는 아직 해소되지 않았다. 그룹을 분할해 물려받았지만 모두 성공적으로 경영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차라리 경영능력이 출중하다고 판단한 자식에게 그룹을 물려줬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다른 자식들은 지주회사의 지분만 갖고 배당을 받는 것이 자신들에게도 유리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무조건 기업의 회장이나 사장을 해야 인생의 폼이 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창업자의 장남으로 그룹을 경영하고 있는 조양호 회장의 자녀들도 튀는 행동으로 이슈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3세가 경영전면에 나서고 있지만 다른 그룹과 마찬가지로 이들의 능력을 객관적으로 검증하기 어렵다. 경영능력은 평가하기 어려운데, 경영자로서 이해하기 어려운 돌출행동은 부정적인 평가를 유도한다. 차세대 오너로 꼽히는 3세가 불필요한 논쟁에 휘말리면서 실력부족을 드러내거나 기업가치를 훼손한다면 기업의 미래는 어둡다.
▲ 대한항공 관계자들이 19일 오후(한국시각) 나보이에서 공항 인근 자유경제개발구역(FIEZ) 지원을 위해 개발 중인 배후 복합단지 내 주거 시설인 'HJ 나보이 컴플렉스 (HJ Navoi Complex)' 개관식을 개최하고 있다.
한진뿐만 아니라 국내 모든 대기업의 후계자에 해당되는 말이다. 일부 국내 대기업의 역사가 50여 년을 넘어 서면서 아직 국내 대기업 중 어디도 후계자로 지목된 2세, 3세가 확실한 경영능력을 보여준 곳은 없다. 그룹을 물려받은 2세나 3세가 정상적인 경영에 실패해 그룹을 망하게 한 사례는 많다. 2세의 경우는 큰 실수만 하지 않으면 창업자의 가신들이 조력을 잘 하기 때문에 결정적인 위기를 초래하지 않지만, 3세의 경우에는 경험이 풍부하고 능력 있는 가신들이 자발적·비자발적으로 조직을 떠났기 때문에 위기진단이나 대처능력을 갖지 못한 경우가 많다.
이제 오너의 자식이라는 신분뿐만 아니라 경영능력도 보여 줘야 주주, 임직원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지지와 존경을 받을 수 있다. 그룹차원에서 인위적인 성공체험은 후계자 본인뿐만 아니라 기업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후계자 자신도 주위의 아부성 발언을 경계해야 한다. 후계자가 치열하고 어려운 과정을 거친 창업자보다 학교공부를 많이 하고, 지식도 풍부하겠지만 기업경영의 성공이 학교성적이나 지식의 양에 절대적으로 의존되지는 않는다. 자신의 능력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되는 자녀들은 조용하게 자신의 그릇에 맞는 인생을 사는 것이 행복하다는 사실도 잊지 않았으면 한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인생의 본질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게 된다. 기업문화를 연구하고, 주요 대기업의 기업문화를 분석하면서도 기업의 본원적 경쟁력이 무엇일까에 대한 생각을 한다. 일본에는 많은 100년 기업이 왜 한국에는 나오지 않는 것일까? 왜 부자 3대를 이어가지 못하는 것일까? 일부 연구소나 전문가들이 100년 기업의 조건으로 제시하는 것이 타당한가? 삼성이 그토록 닮고 싶다는 스웨덴의 발렌베리가문의 진정한 노하우는 무엇일까?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기 때문에 선대가 쌓은 재산과 명예를 후대에 넘겨주고 싶어 한다. 당연한 욕심이라고 생각한다.
한국과 일본의 장사(사업)에 대한 관념을 간단하게 비교해 보자. 한국은 사농공상(士農工商)으로 상인을 천시했지만 일본은 그렇지 않았다. 일본은 사회적 윤리를 지키면서 장사를 하는 것이 기본이라고 생각하지만, 한국은 어떻게든 돈만 벌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도 차이가 있다. 장사의 핵심이 무엇인지에 대한 생각도 다르다. 한국은 장사를 하면 주인이 카운터를 보면서 돈을 관리한다. 일본의 주인은 카운터가 아니라 현장 일을 한다. 음식점을 경영할 경우 일본의 주인은 주방에서 음식을 직접 한다. 조리법은 대대로 전수돼 몇 백 년 동안 이어진다.
한국의 음식점 주인들은 주방업무는 사람을 고용하고, 자신은 카운터에서 편하게 계산만 한다. 종업원이 혹시 돈을 훔칠까 봐 가장 중요한 돈을 챙긴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음식점의 핵심경쟁력은 카운터에서 돈을 정확하게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주방에서 맛있는 음식을 만드는 데서 나온다. 망하지 않고 수십 년을 이어오고 있는 음식점의 경우 자손들은 모두 음식 조리법부터 배우고, 주인이 직접 양념준비나 대표 음식의 조리를 책임진다. 주인이 주방이 아니라 카운터에 앉아 있는 음식점은 3년을 넘기기도 어렵다. 직장 퇴직자들이 요식업 창업을 쉽게 생각하고 달려들지만 대부분이 3년도 넘기지 못하고 망한다. 음식조리를 할 줄 아는 주인의 음식점만 살아남는다.
▲ 대한항공이 최근 인천시 용유초등학교에서 1~3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늘사랑 영어교실'을 개최했다. 대한항공 인천여객서비스지점 직원들이 어린이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음식점의 경영에 대해 설명한 것은 기업경영도 규모만 다르지 본질은 동일하다는 것을 말하기 위함이다. 음식점의 핵심이 주방이라면, 기업의 핵심은 관리가 아니라 제조나 서비스 현장이다. 창업자는 현장에서 일을 하면서 기업을 키웠지만, 후계자들은 창업자가 번 돈으로 편하게 공부하고, 현장이 아니라 관리업무부터 배운다. 경영학을 잘 모르는 창업자가 회계, 재무와 같은 관리도 중요하다는 것을 파악했기 때문이다. 다른 이유는 자식에게 어려운 현장 일을 시키고 싶지 않는 것이다. 현장을 모르는 후계자가 관리만으로 기업을 유지·발전시키는 일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한진이 글로벌 물류기업으로 자리매김하고자 한다면 조중훈 회장의 자식이나 손자중에서 물류업의 일선에서는 사람이 나와야 한다. 즉 다시 말하면 한진이 해운, 항공물류를 주력으로 하고 있다면 선박을 운행하는 항해사, 항공기를 조종하는 조종사 혹은 정비사를 해야 한다. 옆에서 본 이론만 가지고 전문가들을 통제하고 관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조중훈 회장도 장남인 조양호 회장에게 대한항공을 맡기려고 했다면 아들을 항공기 조종사나 정비사로 만들었어야 했다. 다른 아들들도 마찬가지다. 마케팅이나 기획부문 경험만으로 대한항공을 경영하는 것은 어렵다.
경영자가 호통이나 치고, 무조건 밀어붙여 성과를 내는 시대는 이미 지났다. 한진의 조양호 회장도 현장에 대한 지식과 경험이 풍부하지 못해 한진의 핵심 경쟁력을 잘 살리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자신의 자식들이 아무리 귀엽고, 사랑스럽더라도 힘들고 어려운 현장업무부터 시켰어야 했다. IT서비스, 마케팅, 기획과 같은 업무를 경험하고 인위적인 성공체험을 쌓아 주는 것만으로 경영권을 승계한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조양호 회장의 자식들이 아직 어리니 본질의 교육을 하는데 늦지는 않았다고 본다.
3세의 트위터 논란, IT서비스업체 일감몰아주기, 대한항공 기내폭행 사건일지 유출, 사건일지 유출에 대한 평가 등 다양한 논란의 중심에 후계자로 지목된 3세들이 있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대처하고 있다고 판단할 수 있지만 앞에서 지적했듯이 본질을 잘 파악하고 있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업의 본질을 파악하지 못하면 제대로 된 해결책을 찾기 어렵다. 항공업의 본질이 무엇인지, 물류업의 미래방향이 어떤 것인지, 기업문화의 혁신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 등 고민거리가 산재해 있다. 한진의 사업이 전반적으로 정체돼 있고, 본원적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는 이유가 본질을 놓치고 있기 때문이라고 판단돼 아쉬움이 남는다.
/민진규 객원기자(국가정보전략연구소 소장)/stmin@hotmail.com
저작권자 © Institute for National Intelligence Strategy,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