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칼럼] 전환기의 남북관계 무엇을 할 것인가(2)
국가정보전략연구소
2011-12-05 오전 10:46:00
이 글은 '한반도 비전과 통일'(이사장 봉두완)이 2011년 10월 26일 광화문 프레스클럽 19층에서 개최한 제1차 세미나에서 발제자인 문정인 교수가 발제한 논문에 대하여 필자인 송종환 명지대 북한학과 초빙교수가 토론자로 참가해 발표한 토론문을 정리한 것 입니다. 남북관계를 이해하고, 어떻게 정립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하는 것이 이 시대를 사는 지식인의 소명이라고 생각합니다. 향후 남북관계에 따라 정권의 향방도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더욱 중요한 이슈에 해당돼 관련 자료를 최대한 소개하고자 한다.

4. 이 시점에 무엇을 해야 하나?

학자들의 10~20년 내 한국 주도의 통일 예측과는 달리 한반도의 현실은 북한의 3대 세습 공식화와 2010년 3월 26일 천안함 폭침, 11월 23일 연평도 포격 등 호전성으로 인해 한반도의 리스크가 증대되어 평화적 통일은 점점 멀어지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북한의 3대 세습 공식화를 계기로 북한 핵 문제를 비롯 한반도 문제의 궁극적 해결은 한국 주도의 통일 밖에 해결책이 없다는 국민적 인식, 합의와 각오가 확산될 가능성이 크다. 이명박 정부는 남은 임기 동안 지속적으로 일관되게 추진할 일들이 많다.

첫째, 한국은 이제까지의 분단관리에서 통일 대비로 방향을 바꾸어야 하며 한반도 통일 비전을 분명히 하고 이 방향에서 국민이 하나가 되도록 하여야 한다. 자유민주통일이 확고한 시대정신이 되고 지향하는 통일비전임을 분명히 하여야 하며, ‘혈통’과 총구에 의한 왕조적 권력세습이 세계사와 민족사의 주류에서 크게 이탈한 반역사적이고도 비민주적임을 거국적으로 공론화하여야 한다.(4)

글로벌한 차원에서 사실상 공산주의는 사라지고 한국이 선택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체제가 세계적 트렌드이다. 외관상 공산주의를 표명하고 있는 4개국(중국, 베트남, 쿠바, 북한)도 순수한 의미의 공산국가가 아니며, 이들 나라의 미래도 시간적 차이는 있겠지만 궁극적으로는 1990년을 전후하여 러시아와 동구 공산국가들이 경험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체제로 체제전환을 할 가능성이 크다.

한국은 대한민국 헌법의 핵심 가치(Core Values)이며 건국 후 성장, 번영해온 이념으로서의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체제를 기반으로 하여 평화ㆍ자유ㆍ민주· 경제적 풍요와 복지를 구가하는 선진 일류국가로의 통일과 세계평화와 인류의 보편적 가치인 인권창달에도 기여하는 것을 보다 분명하게 확실히 하는 것이다.(5)

둘째, 당면한 북한의 대량살상 무기 개발과 각종 군사적 도발, 북한의 전제 군주적 권력 승계를 맞아 한국의 여야 지도자는 물론 국민들이 하나가 되어 반드시 올 통일을 구현하기 위하여 국방을 튼튼히 하고 대내체제를 선진화하고 국제적 협력을 강화해 나가면서(6) 새로운 남북한 관계 정립을 위해 이제까지 해온 대북정책을 철저히 반성, 조정하여 자유민주주의 통일의 기반을 구축해 나가야 한다.

셋째, 북한의 대남전략과 통일정책을 반영한「6ㆍ15 남북공동선언」과 그 실천 강령인「10ㆍ4 선언」을 바르게 이해, 인식한 선에서 두 선언을 계승할 것은 계승하고 바르지 않는 것은 분명한 입장을 천명하여야 한다.

1920년대 초 레닌이 제시한 반제국통일전선전술의 ‘민족해방’과 ‘인민민주주의 혁명’과 연방제 이론이 북한 노동당 규약과 통일정책에 옮겨지고 그것이「6ㆍ15 남북공동선언」과 「10ㆍ4 선언」에 그대로 반영되었다는 것을 명확히 인식하고 이해하여야 한다.(상세 문헌적 비교는 첨부)

이러한 이해와 인식에서 출발하여「6ㆍ15 남북공동선언」과「10ㆍ4 선언」 제1항 “우리 민족끼리 통일”이 주한미군철수가 아니라 민족당사자 해결이며, 제2항 연합제와 연방제 통일 관련 부분은 북한 측의 ‘고려민주연방공화국 통일’ 포기를 전제로 합의하였음을 분명히 하여야 한다.

이러한 해석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2000년 6월 15일 평양에서「6ㆍ15 남북공동선언」을 합의한 후 서울로 돌아와 국무회의에서 설명한 내용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과거에는 자주를 외세를 배격하는 의미로 해석되었는데, 이것은 이제 그렇게 좁게 볼 것이 아니라 오히려 주변국과 잘 지내며 우리 문제를 자주적으로 해결해 간다”는 의미라고 하면서 자주원칙과 국제협력이 모순되지 않는다고 설명하였다.(7)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에서 논의된 이른바 ‘자주’문제에 대한 임동원의 회고록도 이와 비슷하다. 김정일 위원장이 “통일문제는 어디까지나 남과 북이, 우리민족끼리 힘을 합쳐 해결해 나가야 합니다. 당사자끼리 해결하자는 것이지요.”라고 말한데 대해 김 전 대통령은 ‘배타적인 자주’가 아니라 ‘열린 자주’가 되어야 함을 주장하여 한반도 평화 문제는 주변국의 협력을 얻어 남북이 주도해 나가야 하는데 두 정상이 인식을 공유하게 되었다.(8)

북한의 연방제 합의 주장에 대하여도 2009년 10월 9일 김 전 대통령은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와의 영수 회담에서 “연방제는 외교, 군사권을 중앙정부에 일임하는 것인데, ‘낮은 단계연방제’는 그러하지 않기 때문에 북한 측이 연방제를 포기한 것으로 본다”고 말하고 박재규 통일부 전 통일부장관도 11월 6일 통일부에 대한 국정감사장에서 야당의원의 질문에 대하여 “북한 스스로 연방제가 실효성이 없다고 보고 사실상 포기한 것”이라고 답변하였다.

남북정상회담에서 논의한 이 부분에 대해서도 임동원은 김정일이 ‘낮은 단계 연방제’라는 용어로 합의하자는 주장을 굽히려 하지 않았지만 “통일은 목표인 동시에 과정”이라는 데 인식을 같이 하고, “점진적·단계적으로 추진해 나가자는”데 합의하였다고 회고하였다.(9)

그러나「6·15 선언」1항과 관련하여 주한미군 철수 및 힘을 합쳐 미국에 대항하자는 북측 주장에 대해 김대중 정부는 침묵하고 노무현 정부는 주한미군철수 예견되는 한미연합사 해체에 주력하고,「6·15 선언」2항과 관련하여 김대중 대통령이 연방제 통일을 합의하였다는 주장을 해도 이에 강력히 부정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북측은「6·15 선언」과「10·4 선언」으로 대남공산전략과 연방제 통일정책 기반을 구축하였으므로 적화는 되었으니 통일만 남았다는 자랑을 하고 한국 내 친북·종북 좌파세력들은 정부 안팎에서 공개적으로 북한 주장에 호응하는 현상을 초래하였다.

이명박 정부는 물론 과거 정부를 대표하였던 현재의 야당 지도자와 그들을 지지하는 학자들은「6·15 선언」1~2항에 대해 김대중 전 대통령이 주장한 민족당사자 해결과 북한의 연방제 포기를 강력히 부각시켜 국민 여론 분열을 막는데 힘을 모아야 한다.

대기업 간부, 항공기 기장, 군인과 공무원·공기업 간부가 회원이 되어 북한체제를 찬양하는 종북 인터넷 사이트가 122개나 활개를 치고 있고 법정에서 “위대한 김정일 장군님 만세‘를 외치는 것은(10) 당연히 규제되어야 한다.

넷째, 한반도를 안정화시키기 위한 전략적 사고에서 유연한 접근과 대화를 개시하여야 한다.

2010년 3월 26일 북한에 의한 천암함 폭침, 11월 23일 연평도 포격으로 인한 국민의 희생을 잊을 수 없다. 그러나 61년 전 북한의 기습 남침으로 인한 전국토의 초토화, 1983년 10월 9일 북한에 의한 버마 아웅산 묘소 테러로 인한 장, 차관의 희생(17명 사망과 14명 부상), 1987년 11월 19일 KAL 858기 폭파테러 등이 있었음에도 한국은 그때마다 아픔을 딛고 더 큰 국가목표를 위하여 북한에 접근하고 대화를 가졌다.

한국은 그 어느 때보다 굳건한 한미동맹을 바탕으로 북한의 추가도발을 막는 것을 최우선하면서 단호하고 원칙 있는 대북정책의 일관성 유지로 북한 행동 변화를 유도해 나가야 할 것이다.

김정일 정권과 주민을 분리하여 북한 주민에 다가가는 교류·협력의 길을 찾아야 한다. 2011년 5. 24조치로 민간 기업들이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도 감안하여 민간 기업의 대북 경제협력 금지를 해제하여 꽉 막힌 남북한 관계의 돌파구를 여는 것이 바람직하게 보인다.

한국은 끝까지 북한과의 대화의 문을 열어놓고 또 여건이 되는대로 북한과 대화를 추진하여야 하나, 정상회담을 포함한 대화 재개에 조급성을 보이지 않고 앞으로 북한과 대화하고 합의서를 채택할 때도 상대가 공산주의자임을 유념하여야 한다.

북한을 비롯한 공산주의자들은 전쟁이나 프롤레타리아 혁명으로 자본주의체제를 전복시킬 수 없는 수세적 상황에서 대화라는 수단을 택하고 또 그 상황에서도 ‘혁명’이나 전쟁에서 얻지 못한 것을 얻기 위히여 전투하는 식으로 대화를 한다. ‘동포애로 가슴을 열고 북한과 대화를 하면 이루지 못할 것이 없다’는 순진한 생각은 하지 않아야 한다.

특히 임기 말 정상회담 추진에 대하여는 지난 정부의 경험과 지난 5월 북한이 보인 태도에 비추어 신중을 기하여야 한다. 2000년과 2007년 두 번 한국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한 만큼 북한 측의 답방 없는 상황에서 다시 평양을 방문하는 것은 아량이 아니라 굴종으로 비칠 우려가 있으므로 하지 않아야 한다.

향후 정상회담을 하게 된다면 동서독 간에 신뢰가 회복되지 않은 시기인 1970년 3월과 5월 동서독 정상이 회담 보좌 수행원만 대동하고 국경지역 도시인 동독 에르푸르트와 서독 카셀로 열차로 이동하여 환영식과 만찬 등의 행사 없이 실무형 정상회담을 개최한 사례를 참고하여 이번에는 한국 측 지역인 도라산역을 추천한다.

도라산역에서 회담을 개최하면 김정일이 답방 합의사항을 이행하지 않았다는 비판을 피할 수 있고 북한 측 지역인 개성공단에서의 후속 정상회담도 기대된다. 2002년 2월 부시 대통령 방한 시 김대중 대통령과 같이 연설을 할 정도의 시설이며 북한이 우려하는 경호환경도 서울보다 낫다.

남북 간에 신뢰가 전혀 없으면서 대통령 부인까지 대동하여 평양을 재차 방문하여 환영행사, 오·만찬 행사를 하는 것은 군사적으로 대치관계에 있는 한반도의 현실이나 국제관례에도 맞지 않다. 한국지역인 도라산역에서 정상회담을 갖고 이어서 북한 지역인 개성공단에서 실무형 정상회담을 연속으로 개최할 경우 당장의 성과가 없다 하더라도 남북한 관계를 정상화하는 전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11)

2010년 3월 북한에 의한 천안함 폭침 이후 지금까지 북한이 보인 군사도발과 대화 공세에 일비일희하지 않고 반드시 올 통일을 확신하고 국가안보를 튼튼히 하여 우리를 지키면서 경제발전과 함께 국내 체제 선진화를 위한 국론을 모아 나가야 할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국내외 정세 변화로 대화가 재개될 경우 한반도에 평화를 정착시키고 남북한 관계를 교류·지원 →상호 감사와 보람을 느끼는 선순환 관계로 바꾸고 북한 급변사태 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체제에 의한 ‘올바른 통일’의 기회를 잡도록 대비해 나가는 것이 오늘을 사는 우리가 할 일이다. (12)

이제 이명박 정부 취임 이후 남북한 관계가 경색된 것은 북한이「6·15 남북공동선언」과 「10·4 선언」을 북한식 해석대로 전면 이행할 것을 요구한 데 있다는 토론을 요약하고 주제 발표자에게 질문을 하고자 한다.

발표자의 발표 내용 중 혼란스런 정책결정구조와 대북정보 실패를 지적하고 통일비용 조달 방법으로 시장을 통한 대북민간투자, 대일청구권 자금, 미국, 영국 등의 양자 원조, 그리고 국제기구를 통한 공여 등을 제시한 혜안에 적극 동감을 표한다.

그러나 이러한 조달 방법들은 대부분 한반도가 자유민주주의로 통일을 될 때 고려될 수 있는 사업 들인데, 발표자가 생각하고 있는 한반도 통일의 비전은 자유민주주의 통일, 북한의 수령유일지배 체제 존속을 전제한 일국양제 또는 제3의 길 중 무엇을 염두에 두고 있으며 또 발표자가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그 실천을 위한 노력을 하여야 한다고 주장하는「6·15 남북공동선언」제1, 2항을 어떻게 해석하고 있는지를 밝혀 줄 것을 질문하는 것으로 토론을 끝내고자 한다.

<필자 주>

4) 송종환, “3대 세습 이후 북한체제 전망과 한국의 대첵,” 김재창·류재갑 편, 『북한 어디로 가나』(서울: 선한 약속, 2010), p. 45.

5) 자유·행복·인권·공영을 위한 인간 중심의 목표·가치 지향의 통일론은 ‘선진화통일방안’을 주장해온 정낙근, 홍성기, 조영기 등에 의하여 발전되어 박세일에 의해 종합되었다. 상세 내용은 정낙근, “통일정책과 통일방안의 재검토,” 사단법인 통일경제연구협회 통일경제정책 워크숍「김정일 이후 체제: 어떻게 대비해야 하나」(2009. 8. 28-29), pp. 1-17; 홍성기, “선진화통일철학과 통일이념,” 한반도선진화재단 “선진화통일정책” 세미나「이제는 통일이다」(2009. 11. 5), pp. 3-21; 조영기 외,「미래지향형 통일방안연구-‘선진화 방안’의 모색을 중심으로-」(서울: 한반도선진화재단, 2009), pp. 53-59; 박세일(2010. 11. 23), pp. 32-34를 참조.

6) 국제협력 강화와 관련하여 아시아 국가들은 양자외교를 보완하는 동시에 역내 세력들 간 지속되어 온 긴장을 공동으로 해결하기 위한 협력적 안보 레짐을 발전시켜야 한다. 뿐만 아니라 동아시아의 안보 이슈를 논의하기위해 27개국이 참여하는 공식 협의체인 ‘ARF’, 공동의 정책관심을 조정하기 위한 ‘한중일 정상회의’, 'APEC', 그리고 미국과 러시아가 새로이 참여하는 동아시아 정상회의 등과 같은 아시아의 현존하는 다자주의를 더욱 더 강화해 나가야 한다. Park Geun-Hye, “A New Kind of Korea, Building Trust Between Seoul and Pyongyang,” Foreign Affairs, September/ October, 2011, http://www.foreignaffairs.com (검색일자:2011. 8. 30)

7) 『중앙일보』, 2000년 6월 20일자.

8) 임동원, 『피스메이커: 남북관계와 북핵문제 20년』(서울: 중앙books, 2008), p. 202.

9) 임동원(2008), pp.102-105.

10) 『조선일보』, 2011년 11월 20일자.

11) 송종환, “도라산서 남북정상회담을,”『동아일보』, 2010. 2. 24, p. A33.

12) 송종환, “5.24 대북 조치이후 남북한 관계, 향후 전망과 대책,” 『한국발전 리뷰』(2011.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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