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안내] 터 - 우리가 몰랐던 신비한 땅 이야기 8 [본문내용 미리보기]
터- 우리가 몰랐던 신비한 땅 이야기
지은이_ 민홍규
“돌이켜보면 이 터는 현재 미완으로 마무리 되었지만,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처음 국운융성과 국민화합의 4대 국새를 위해 한반도의 단전자리인 이곳을 찾아내고 나서 무척 기뻤다. 국새를 만든 뒤 숭례문이 불타면서 터를 더 새롭게 알게 되었다. 모든 것을 하늘의 뜻에 맡긴다.”(286쪽)
“쉬고 있는 내게 낮에 차나무를 심던 일꾼이 넌지시 와서 전한다. ‘필봉산 밑에서 밤낮없이 큰 소나무를 파내가는 것 같습니다.’ 산을 누가 훼손하는지 궁금했다. 필봉산 용맥이 흘러오는 자리에서부터 국새전각전 바로 옆까지 붙여서 작지만 휴양지 사업을 할 것이란다. 시간이 지나자 그곳에 굴착기가 들어가기 시작했다. 나중에야 군청의 해명을 들었지만 마음이 무거웠다.
필봉산과 왕산 아래 이 터는 세 혈처와의 관계가 지대하여 개발할 때엔 세심한 주의가 필요한 곳이다. 시간이 갈수록 옆 터는 더 많이 넓게 파헤쳐졌다. 모두에게 일일이 말했다. ‘산이야 얼마든지 있지 않느냐. 필봉산 아래 용맥 줄기를 파내면, 나와 이 터의 운명은 너무나 어려워진다.’
얼마 지나지 않아 대진고속도로 무주 근처에서 대형 차 사고를 당했다. 하늘이 도와 목숨은 건졌지만 척추가 내려앉는 사고를 당했다. 2009년 7월 9일이었다. 이것이 시작이었다. 환란을 예고하는 경고에 불과했다.”(287~288쪽)
“이미 처음부터 4대 국새사건이 기획되어 벌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예부터 국새는 신품(神品)이라 건드리는 것은 국가를 뒤집는 것과 같다고 했다. 다가올 시련이 두려웠지만 이미 검은 파도가 선을 넘고 있었다. 환란이 시작된 것이다.”(290쪽)
“대자연의 분노가 시작되었다. 2010년 3월 25일 북쪽에서는 함박눈이 내렸고 이 터는 함초롬히 비에 젖고 있었다. 왕산과 필봉산의 혈맥은 더욱 파헤쳐져 산바람이 일고 있다. 국새 기운이 정지되고 비보 건축도 중단됐다. 이 땅의 환란을 풀어내기 위한 이 터의 일이 곳곳에서 막히고 있다. 이 터에서 만든 4대 국새가 짓밟히고 있었다. 다음 날이었다. 2010년 3월 26일, 터가 진동하였다. 아침부터 바람이 세차게 불어 눈을 뜰 수가 없었다. 봄바람이 부는 날, 하늘이 무너지는 충격적인 일이 이 땅에 벌어졌다. 천안함 참사가 났다. 불꽃같은 젊은 병사 40명이 사망했고 6명이 실종되었다. 결국 우려했던 일이 터졌다. 기가 막힐 일이었다. ‘물이 불꽃을 꺼버린 꼴’이다. 화수미제(火水未濟)상이었다. 옛날 정도전이 “숭례문이 불타면…”이라던 말대로 이 땅에 드디어 화마가 염준을 부렸나. 이것은 서막에 불과하였다.”(291쪽)
“하늘이 요동쳤다. 뚫어진 하늘에서 태풍을 쏟아내는 세찬 비바람이었다. 2010년 9월 초의 날씨에 없었던 이변이 계속되었다. 터에 모셔 놓은 세 번째 솥바위 복석정은 끝내 완성할 수 없게 되었다. 이 땅의 더 큰 환란은 어디까지 계속될 것인가.”(293쪽)
“2014년 4월 16일이다. 봄바람이 왠지 차갑다. 하늘이 뒤집혔다. 허망한 바다를 향해 울부짖는 사람들, 찢어지는 가슴을 여미는 통곡이 뉴스로 터졌다. 476명을 태운 세월호 여객선이 침몰했다. 300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 대부분이 불꽃같은 청소년들이다. 천안함과 똑같은 선박 사고였다. 계절도 비슷하다. 두 사건 모두 화수미제 상이라 놀랐다. 물(바다) 위에 떠 있는 불꽃(청소년)을 삼켜버린 괘 그대로다. 공교롭게도 이 두 사고는 숭례문의 염준 현상이 짙다. 복석정의 엇박자 힘이 강하게 느껴진다.”(30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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