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논술 논제 분석] ⑥동학혁명에 관해 논하라
민진규 대기자
2023-07-02 오후 3:34:25
몇 년 전 방영된 SBS 드라마 ‘녹두꽃’은 동학혁명을 주도한 녹두장군 전봉준이 아니라 혁명을 위해 죽창을 들고 모여든 일반 백성들에 초점을 맞췄다. 그동안 역사 드라마가 왕, 양반, 지도자와 같은 사회 지도층을 집중 조명한 것과 차별화된 것이다. 녹두꽃은 눈부시게 아름다운 꽃이지만 향기가 없어 나비가 날아오지 않는다고 한다.

필자는 어린 시절 농촌에서 자라 녹두꽃을 많이 봤지만 나비가 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몰랐다. 주위 어른들이나 학교 선생님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다. 편협한 역사관을 가진 집필자들이 저술한 한국 역사책을 공부한 국민 대다수가 모르고 있는 것이 단지 ‘녹두꽃’의 진실만은 아닐 것이라 믿는다. 미완의 민중 혁명인 동학혁명의 이슈와 교훈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 성공하지 못한 아래로부터 혁명이었지만 역사적 가치는 충분해

2017년 정치권이나 권력자가 아니라 일반 소시민들이 촛불시위로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을 이끌어낸 이후 동학혁명에 대한 역사적 평가가 달라지고 있다. 필자가 초∙중고 시절에 배운 역사책에는 ‘동학혁명은 동학교도가 탐관오리의 학정에 반발해 일으킨 농민운동’으로 설명돼 있었다. 간단한 농기구와 죽창으로 무장한 농민군은 신식무기로 체계화된 훈련을 받은 일본군의 상대가 될 수가 없었다.

조선 말기 왕권의 약화에 따른 관리의 부패, 개항 이후 외국산 제품의 침투로 인한 경제적 피해, 국민 중심의 정치사상 태동 등이 동학혁명을 잉태한 배경이다. 왕실과 양반으로 구성된 지도층 내부의 반성과 혁신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인지한 민중이 ‘아래로부터 혁명’을 추진했다는 것 자체가 한국 역사에서 획기적인 사건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동학혁명의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이슈에 대해 간략하게 정리해보자.

첫째, 정치적 이슈는 동학교도 중심의 아래로부터 혁명, 지도층의 국제정세 무감각 등을 지적할 수 있다. 전라도 고부군수의 학정에 대항해 일어난 농민군은 지역에 세력을 구축하고 있던 동학의 조직을 등에 업었다. 체계적인 지휘부를 구성하고 지역간 연대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동학이라는 종교단체가 앞장서면서 순수한 정치변혁에 대한 요구는 탈색됐다는 평가를 받았다.

5000년 한민족 역사에서 아래로부터 혁명이 성공한 사례는 전무하다. 민중의 분노는 지도층의 내분을 이끌어냈을 뿐 권력의 교체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동학혁명을 지휘한 전봉준도 지역의 농사꾼에 불과해 19세기 말 동북아 국제질서의 변화에 지식은 부족했다. 개항 이후 조선은 전통적 종주국인 청(淸)과 조공국인 일본(日本)의 권력관계가 뒤집어졌다는 사실조차 파악하지 못했다.

둘째, 경제적 이슈는 양반과 관리들의 토지수탈로 인해 농촌경제의 붕괴, 개항 이후 외국에서 수입된 공산품에 의해 수공업의 몰락, 자연재해로 인한 농업의 한계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18세기 말 영∙정조가 토지제도를 개혁하고 실학을 장려하면서 농촌경제가 살아날 조짐을 보였지만 양반들은 기술진보의 성과를 독점했다.

강화도조약 이후 조선에 진출한 청과 일본의 상인들이 값싼 면직물이 판매하면서 국내 가내수공업이 몰락했다. 농민들은 겨울철과 같은 농한기에 베를 짜서 판매함으로써 농사 이외의 가외수입을 얻을 수 있었지만 이마저도 불가능해진 것이다. 이런 와중에 법에도 없는 세금으로 쌀을 수탈하자 분노가 폭발한 것이다. 토지의 균등배분과 부채탕감이 ‘폐정개혁안’에 포함된 이유다.

셋째, 사회적 이슈는 노비와 천민의 신분제를 철폐하고 차별대우 금지, 과부의 재혼 허락 등도 유명무실해진 신분제를 타파하자는 요구에 포함된다. 조선은 양반, 평민, 노비, 천민 등으로 구성된 신분제 사회였다. 평민에게도 과거를 통해 출세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지만 현실적으로 양반이 독점하면서 신분제가 고착됐다.

조선 중기 이후 상업이나 대규모 농사로 재산을 축적한 노비나 천민들이 양반의 호적을 구입해 양반행세를 할 수 있었던 것도 신분제를 없애자는 요구를 부르짖은 배경이다. 능력에 따라 인재를 등용하라는 건의도 신분제의 굴레를 없애기 위한 자연스러운 방편이라고 볼 수 있다. 양반들이 평민이나 여성을 억압하는 도구로 악용한 유교규범도 시대에 뒤떨어져 과부와 같은 사회적 약자를 보호해 달라는 표면적인 요구로 이어졌다. 

국민은 100년전 농민군보다 똑똑해졌는데 정치권은 오히려 멍청해져

 

▲ 논제 분석과 개요문 샘플 [출처=iNIS]
 

동학혁명은 ‘민중혁명의 기치를 들고 외세척결을 주장해 조선후기 사회변화를 이끌어내는데 기여했다’는 점에서는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 국정원 수험생이 동학혁명을 논하면서 배울 수 있는 교훈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조선 관군의 무능과 왕실의 외세의존 정책으로 인한 혼란의 가장 큰 피해자는 일반 백성들이라는 점이다. 순진한 백성들을 핍박하고 약탈하는 데는 호랑이처럼 용맹한 관군은 신식 무기를 앞장세운 외세의 침입에는 목숨을 구걸하는 비겁한 양에 불과했다. ‘만 백성의 어버이’이라고 유교질서를 앞세웠던 왕과 양반들은 자식인 백성들을 팔아먹고 자신의 이권을 챙기는데 급급했다.

고종은 동학농민군을 회유해 해산하도록 유도한 이후 안핵사(按覈使)를 파견해 동학교도를 탄압했다. 일본의 내정간섭이 심해지자 동학혁명군에 밀지를 보내 일본군에 대항하라는 명령을 내리는 기회주의자적인 처세로 민중의 신뢰를 짓밟았다. 조선의 지배층이 국가의 근본인 민중을 소모품으로 여긴 결과는 조선의 멸망으로 나타났다.

둘째, 동학혁명 지도부가 국제질서의 변화에 무지했고, 조선 왕실의 존재가치를 과대평가한 것도 혁명의 실패로 이어졌다. 일본에서는 메이지유신(明治維新) 이후 정한론(征韓論)이 대두됐고, 청은 일본의 대륙진출을 저지하기 위해 조선의 병합이 불가피하다는 논의를 진행했다. 청을 제압해 동북아 정치 및 군사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던 영국과 프랑스 등도 일본의 정책에 동조했다.

최근 미국의 시리아 쿠르드족 배신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국제정치에서 약소 민족이나 국가의 이익은 철저하게 외면당할 수밖에 없다. 조선민중의 개혁요구도 서구열강의 입장에서 고려할 대상이 아니었다. 조선왕실은 이미 내부적으로 혁신을 할 준비도 역량도 부족한데 ‘왕’이라는 권위에 눌려 타협을 시도한 것도 오판이었다.

셋째, 조선은 유교가 지배한 국가이었기 때문에 전라도 지역에 밀집된 소수의 동학교도가 혁명을 이끌어나가기 어려웠지만 미래의 혁명전사를 양성했다. 농민들은 동학이나 동학이 추구하는 신념보다는 탐관오리의 학정에서 벗어나 생존권을 보장받는데 관심의 초점을 뒀다. 현재도 마찬가지이지만 한민족은 샤머니즘과 같은 토착신앙을 숭상하는 사람이 많고 무신론자도 적지 않아 특정종교의 세력화에 반감을 갖고 있다.

동학혁명의 실패 이후 조선은 급격하게 몰락의 길로 달려간다. 을사조약, 군대해산, 한일합방, 식민지 지배 등의 침략과정에 결연히 일어난 의병은 동학혁명의 영향을 받은 민중들이었다. 동학은 독립운동에도 적극적으로 개입했고 서양문물의 침투로 인한 사회붕괴를 두려워했다. 임진왜란 이후 주류 역사의 뒷방에 머물러 있던 민중들이 전면에 나서는 계기로 작용한 것이 동학혁명이다. 미완의 혁명이었지만 후대에 미친 영향은 작지 않았다.

결론적으로 동학혁명의 실패는 부패한 권력자와 무능한 사회 지도층을 민중의 힘으로 단죄해야만 국가가 멸망하지 않는다는 교훈을 제공했다고 볼 수 있다. 권력 내부의 투쟁으로 촉발되는 위로부터 혁명은 성공 가능성은 크지만 지도층의 교체에 불과하고 민중의 요구를 담아내는데 한계가 있다. 2017년 촛불혁명은 한민족 역사에서 아래로부터의 혁명이 성공할 수도 있다는 희망을 보여줬다.

촛불혁명으로 보수에서 진보로 정권은 교체됐지만 현 정부는 분노한 민심을 해소하는데 성공하지 못했다. 적폐세력을 처단하라는 진보와 무능한 정부를 심판하자는 보수가 서울 광화문, 서초동, 여의도 길거리에서 대결하는 한 사회통합은 불가능하다. 국민들은 100년전 동학혁명을 주도했던 농민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똑똑해졌는데 정부 관료와 정치권은 당시 왕실이나 양반보다 오히려 더 멍청해진 것도 현 난국을 해결할 묘안을 찾지 못하는 요인이라고 판단된다. 

- 계속 – 

* 내용 문의 : 민진규 교수(stmin@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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