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학 총정리 7회 한국, 북한, 미국, 러시아의 정보기구(1/2)
선진국이던 후진국이던, 강대국이던 약소국이던 국가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국가정보기구를 창설하고 유지한다. 대한민국은 고종의 대한제국부터 근대국가로 이행한 것으로 평가 받고 있고, 고종황제가 설립한 ‘제국익문사’가 최초의 정보기관이라고 볼 수 있다. 1902년 6월에 설립된 제국익문사는 총 61명이 국내와 일본, 중국, 연해주 등지에서 활동하였으며, 정부고관과 서울 주재 외국 공관원의 동정, 국사범과 외국인의 간첩행위를 탐지하는 임무를 수행하였다. 1907년 헤이그밀사 사건으로 고종이 강제퇴위 당하면서 활동을 종료한 것으로 추정한다. 1910년 한일강제합방이후 애국지사들이 결성한 의열단, 한국애국단, 한국광복군이 일제에 잔악한 식민지정책에 대항해 요인암살, 주요시설 폭파 등의 비밀공작활동을 수행하였다. 1945년 해방과 미군 군정, 1948년 정부수립으로 이승만 독재, 4∙19학생의거, 5∙16군사쿠테타로 군부의 장기집권, 10∙26사태로 인한 국가혼란을 수습한 것도 12∙12쿠테타를 일으킨 군부였다. 1987년 6∙10 항쟁으로 민주화가 진전되었고, 1992년이 되어서야 이 땅에 문민정부가 들어섰다. 이러한 일련의 정치혼란 속에서 국가정보기관의 영욕의 역사가 되풀이 되었다.
먼저 1948년 5월에 군내 방첩활동을 담당하기 위한 육군 정보국 특별조사과가 창설되었고 1950년 6∙25를 발발을 계기로 특무부대로 개편되었다. 해군과 공군에 방첩대가 창설되어 각각 보안을 담당하다가 1968년 육군 보안사령부가, 1977년 해∙공군 보안부대를 통합하여 국군보안사령부가 되었다. 그러나 보안사령관이던 전두환씨가 박정희대통령 시해로 혼란스런 정국에 군사쿠테타를 하였고 보안사는 5공 출범과 더불어 민간정치분야까지 정보를 수집하는 무소불위의 권력중추기관이 되었다. 1990년 윤석양이병의 민간인 불벌사찰폭로로 국군기무사령부로 개칭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다음 정보사령부는 1948년 HID(Higher Intelligence Department)가 기원이며 북한 군사정보수집임무와 대북침투공작을 담당하였으나 7∙4남북공동성명 이후 공식적으로 공작원 파견은 중단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5공 시절 보안사와 마찬가지로 정보사도 민주화 인사탄압과 테러를 기도하여 사령관이 퇴진하는 등의 치욕을 당했다. 그러나 문민정부 이후 본연의 임무로 돌아가 충실히 이행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 받고 있다.
박정희 5∙16쿠테타 이후 미국 CIA의 지원을 받아 혁명보위기구로 1961년 6월 중앙정보부가 설립되었다. 소련의 KGB와 같은 출발점으로 해외, 국내정보수집, 방첩활동을 총괄하였다. 전두환의 군사쿠테타로 국가안전기획부로 명칭이 변경되었으며 1998년 김대중정부는 다시 국가정보원으로 개칭하였다. 현재는 해외, 국내, 북한 정보를 담당하는 3차장 직제로 되어 있으며 군사정권시절에는 민주화 인사탄압, 고문으로, 문민정부시절에는 각종 불법적인 경제관련 게이트 등에 연루되어 불명예를 겪었다. 특히 2005년에는 과거 안기부의 도청테이프가 유출되어 전직 수뇌부가 다수 구속되는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한국에서 국가정보기관은 정권과의 유착과 정치적 중립성 훼손, 권력남용이 문제가 되었던 만큼 정보기관이 본연의 임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소속 기관원뿐만 아니라 정치권의 각성과 성찰이 필요하다. 민주적 통제가 부족하고 국민이 알권리를 과도하게 제한하여 필요한 정보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북한과 주변국에 대한 정보수집과 분석능력이 취약하고 산업정보활동, 국제범죄, 테러, 정보전 등 떠오르는 현안 이슈에 대한 대비가 부족하다는 지적도 받고 있다. 국정원도 다른 정보기관과 협력하여 업무를 분담하고 내부감찰기능을 강화하여 직원들이 다시는 불미스러운 정치관여나 독직, 정보유출 등의 사건에 연루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계속)
먼저 1948년 5월에 군내 방첩활동을 담당하기 위한 육군 정보국 특별조사과가 창설되었고 1950년 6∙25를 발발을 계기로 특무부대로 개편되었다. 해군과 공군에 방첩대가 창설되어 각각 보안을 담당하다가 1968년 육군 보안사령부가, 1977년 해∙공군 보안부대를 통합하여 국군보안사령부가 되었다. 그러나 보안사령관이던 전두환씨가 박정희대통령 시해로 혼란스런 정국에 군사쿠테타를 하였고 보안사는 5공 출범과 더불어 민간정치분야까지 정보를 수집하는 무소불위의 권력중추기관이 되었다. 1990년 윤석양이병의 민간인 불벌사찰폭로로 국군기무사령부로 개칭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다음 정보사령부는 1948년 HID(Higher Intelligence Department)가 기원이며 북한 군사정보수집임무와 대북침투공작을 담당하였으나 7∙4남북공동성명 이후 공식적으로 공작원 파견은 중단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5공 시절 보안사와 마찬가지로 정보사도 민주화 인사탄압과 테러를 기도하여 사령관이 퇴진하는 등의 치욕을 당했다. 그러나 문민정부 이후 본연의 임무로 돌아가 충실히 이행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 받고 있다.
박정희 5∙16쿠테타 이후 미국 CIA의 지원을 받아 혁명보위기구로 1961년 6월 중앙정보부가 설립되었다. 소련의 KGB와 같은 출발점으로 해외, 국내정보수집, 방첩활동을 총괄하였다. 전두환의 군사쿠테타로 국가안전기획부로 명칭이 변경되었으며 1998년 김대중정부는 다시 국가정보원으로 개칭하였다. 현재는 해외, 국내, 북한 정보를 담당하는 3차장 직제로 되어 있으며 군사정권시절에는 민주화 인사탄압, 고문으로, 문민정부시절에는 각종 불법적인 경제관련 게이트 등에 연루되어 불명예를 겪었다. 특히 2005년에는 과거 안기부의 도청테이프가 유출되어 전직 수뇌부가 다수 구속되는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한국에서 국가정보기관은 정권과의 유착과 정치적 중립성 훼손, 권력남용이 문제가 되었던 만큼 정보기관이 본연의 임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소속 기관원뿐만 아니라 정치권의 각성과 성찰이 필요하다. 민주적 통제가 부족하고 국민이 알권리를 과도하게 제한하여 필요한 정보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북한과 주변국에 대한 정보수집과 분석능력이 취약하고 산업정보활동, 국제범죄, 테러, 정보전 등 떠오르는 현안 이슈에 대한 대비가 부족하다는 지적도 받고 있다. 국정원도 다른 정보기관과 협력하여 업무를 분담하고 내부감찰기능을 강화하여 직원들이 다시는 불미스러운 정치관여나 독직, 정보유출 등의 사건에 연루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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