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학 총정리 8회 중국, 일본, 영국, 프랑스의 정보기구(1/2)
중화인민민주주의공화국, 즉 공산중국은 1949년 장개석정부와 국공내전의 승리로 탄생하였다. 1920년대 사회주의 운동, 1930년대 1차 국공내전, 이어 만주사변, 중일전쟁으로 이어진 외세의 침탈에 따라 국민당과의 연합전선 구축, 일제의 패망 뒤 2차 국공내전을 거쳐 승리하였다. 1930년대 국민당의 공격을 피해 연안으로 도피했던 시기에 공산당은 전열을 재정비하였고 당조직, 당정보조직을 쇄신하였다.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이후 1954년에 국무원을 정식 출범시켜 당, 정, 군의 체계를 갖추기 시작했다. 1960년대 모택동은 스탈린 격하운동에 이견을 보여 소련과 반목하게 되었고 자력갱생을 위해 ‘대약진운동’을 추진하게 된다. 강청 등 소위 4인방의 문화대혁명은 수천만명 인민의 희생, 경제기반의 붕괴, 전통윤리와 문화유산의 파괴 등 완전한 실패로 귀결된다. 결과적으로 소련과의 갈등, 문혁의 실패는 미국과의 협력, 개방경제로 가게 되었으며 숙청되었던 등소평의 복귀를 재촉하였다. 1970년대 초반의 개혁개방정책은 국내 정치투쟁을 촉발시켰으며, 정보조직도 파벌간 정쟁에 휩싸이게 되었다. 미국은 이란회교혁명 이후 1980년대에 들어 중앙아시아의 소련군사기지 감시를 위해 중국 서부지역에 감청기지를 확보하였으며,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반군지원공작을 중국과 공동으로 수행하였다. 그러나 1990년대 소련의 붕괴로 미국의 주도권장악을 경계하여 관계가 악화되었으며 동북아에서 군사력확장을 계기로 영향력강화를 노리고 있다.
중국의 주요 정보기관은 다음과 같다. 1930년대 중앙연락국으로 시작한 대외연락부는 당의 대외관계 주무부서로서 사회주의 국가, 전세계 공산당, 좌파 정당 및 단체와의 관계를 유지, 발전시키는 목표를 가지고 국무원 외교부의 업무를 지휘, 조정한다. 마찬가지로 1930년대 설립된 통일전선공작부는 국민당과의 위장협력을 위한 역할을 하다가 국민당 정부의 대만후퇴 이후, 대만, 홍콩, 마카오 및 전세계 화교단체에 대한 공작활동을 담당하고 있다. 한국의 국정원과 동일한 역할을 하는 국가안전부는 1983년에 설립된 대표적 정보기관이다. 개혁, 개방정책으로 외국인의 입국 및 내국인의 출국이 증가하여 간첩활동이 활발하다고 판단하고 반사회주의 책동을 방지하는 역할을 한다. 공공안전부는 1989년 천안문사태를 무력으로 진압한 인민무장경찰을 휘하에 두고 있으며 최근 발생한 티베트시위를 진압하기도 했다. 국경수비, 출입국관리, 대만인 감시 등의 임무를 담당한다. 공영언론기관인 신화사는 전세계에 약 1만명의 직원을 파견하여 정보를 수집하여 당과 정부에 제공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공산주의사회에서 모든 국가기관이 사회주의 혁명의 완성을 위해 매진한다는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현재 중국은 경제발전을 제1의 목표로 선진국의 경제정보 및 산업기술획득을 위해 국가정보기관이 다양한 공작활동을 활발하게 전개하고 있어 각국과 외교적 마찰을 빚고 있다. 특히 미국 상원은 COX보고서를 통해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였다.
아시아의 후진적이었던 작은 섬나라인 일본은 지리적인 이점으로 인해 서양문물을 빨리 받아들였다. 서양의 총포술을 일찍 받아들여 1592년 조선을 침략하는 임진왜란을 일으켰으나 실패한 후 안정된 봉건국가로 내실을 다지게 된다. 하지만 미국 페리제독의 굴욕적인 통상압력에 굴복한 후 젊은 무사들을 중심으로 구시대의 막부세력을 무너뜨리고 메이지유신을 단행한다. 폐쇄적인 사고에 매몰되어 있던 청과 조선과는 달리 근대화에 눈을 일찍 떠 신사유람단을 파견하고 서구문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부국강병의 기치를 높이게 된다. 이런 노력에 대한 자신감은 조선을 강제합병하고 청일전쟁, 러일전쟁을 통해 아시아의 맹주로 발돋움하는 원동력이 된다. 1차 대전 이후 연합국으로부터 지원을 받아 군사대국화를 지향하였고, 1930년대 들어 만주사변, 중일전쟁을 일으킨다. 군부의 자신감은 전략적인 오판을 초래하였고 미국과 전면전을 벌이는 2차 세계대전을 촉발한다. 진주만의 기습공격으로 초기 승세를 잡았지만 미드웨이해전에서 패전함으로써 해외 원유 및 식량 수급망이 봉쇄되어 결국 항복하게 된다. 미군정 시기를 거치고 한국전쟁과 월남전의 발발로 미군수품의 보급기지역할이 잿더미가 된 산업시설의 재건을 도왔다. 정, 관, 산업계의 ‘철의 삼각동맹’으로 선진국의 기반기술을 적극 도입함으로써 경제대국으로 발돋움하였다. 물론 90년대 거품붕괴로 ‘잃어버린 10년’을 경험하였지만 기초산업의 건실화로 불황의 그늘에서 벗어나고 있는 것으로 평가 받고 있다.(계속)
중국의 주요 정보기관은 다음과 같다. 1930년대 중앙연락국으로 시작한 대외연락부는 당의 대외관계 주무부서로서 사회주의 국가, 전세계 공산당, 좌파 정당 및 단체와의 관계를 유지, 발전시키는 목표를 가지고 국무원 외교부의 업무를 지휘, 조정한다. 마찬가지로 1930년대 설립된 통일전선공작부는 국민당과의 위장협력을 위한 역할을 하다가 국민당 정부의 대만후퇴 이후, 대만, 홍콩, 마카오 및 전세계 화교단체에 대한 공작활동을 담당하고 있다. 한국의 국정원과 동일한 역할을 하는 국가안전부는 1983년에 설립된 대표적 정보기관이다. 개혁, 개방정책으로 외국인의 입국 및 내국인의 출국이 증가하여 간첩활동이 활발하다고 판단하고 반사회주의 책동을 방지하는 역할을 한다. 공공안전부는 1989년 천안문사태를 무력으로 진압한 인민무장경찰을 휘하에 두고 있으며 최근 발생한 티베트시위를 진압하기도 했다. 국경수비, 출입국관리, 대만인 감시 등의 임무를 담당한다. 공영언론기관인 신화사는 전세계에 약 1만명의 직원을 파견하여 정보를 수집하여 당과 정부에 제공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공산주의사회에서 모든 국가기관이 사회주의 혁명의 완성을 위해 매진한다는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현재 중국은 경제발전을 제1의 목표로 선진국의 경제정보 및 산업기술획득을 위해 국가정보기관이 다양한 공작활동을 활발하게 전개하고 있어 각국과 외교적 마찰을 빚고 있다. 특히 미국 상원은 COX보고서를 통해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였다.
아시아의 후진적이었던 작은 섬나라인 일본은 지리적인 이점으로 인해 서양문물을 빨리 받아들였다. 서양의 총포술을 일찍 받아들여 1592년 조선을 침략하는 임진왜란을 일으켰으나 실패한 후 안정된 봉건국가로 내실을 다지게 된다. 하지만 미국 페리제독의 굴욕적인 통상압력에 굴복한 후 젊은 무사들을 중심으로 구시대의 막부세력을 무너뜨리고 메이지유신을 단행한다. 폐쇄적인 사고에 매몰되어 있던 청과 조선과는 달리 근대화에 눈을 일찍 떠 신사유람단을 파견하고 서구문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부국강병의 기치를 높이게 된다. 이런 노력에 대한 자신감은 조선을 강제합병하고 청일전쟁, 러일전쟁을 통해 아시아의 맹주로 발돋움하는 원동력이 된다. 1차 대전 이후 연합국으로부터 지원을 받아 군사대국화를 지향하였고, 1930년대 들어 만주사변, 중일전쟁을 일으킨다. 군부의 자신감은 전략적인 오판을 초래하였고 미국과 전면전을 벌이는 2차 세계대전을 촉발한다. 진주만의 기습공격으로 초기 승세를 잡았지만 미드웨이해전에서 패전함으로써 해외 원유 및 식량 수급망이 봉쇄되어 결국 항복하게 된다. 미군정 시기를 거치고 한국전쟁과 월남전의 발발로 미군수품의 보급기지역할이 잿더미가 된 산업시설의 재건을 도왔다. 정, 관, 산업계의 ‘철의 삼각동맹’으로 선진국의 기반기술을 적극 도입함으로써 경제대국으로 발돋움하였다. 물론 90년대 거품붕괴로 ‘잃어버린 10년’을 경험하였지만 기초산업의 건실화로 불황의 그늘에서 벗어나고 있는 것으로 평가 받고 있다.(계속)
저작권자 © Institute for National Intelligence Strategy,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